arrow_back_ios_new 직지 휴먼
묘덕(妙德) : 직지 출간 시주(후원)자

나무에 글자를 새겨 어미자를 만들고 주물사에 거푸집을 만들어 그 사이에 쇳물을 부어서 활자를 만드는 방법

묘덕(妙德)은 고려 우왕(禑王) 때의 비구니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경, 직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직지의 출판 경비를 시주하였다.

제작 비용은 묘덕 혼자 감당하였고, 이듬해 다시 목판으로 간행할 때도 묘덕은 다른 시주자들과 함께 비용을 댔다. 고려시대에는 재산이 아들과 딸에게 똑같이 상속되었기 때문에 상류층 부인들이 사찰에 시주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묘덕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이색(李穡)이 1378년에 쓴 ‘윤필암기(潤筆菴記)’라는 글에는 “저 정안군부인(定安君夫人) 임씨(任氏)는 이제 비구니가 되었고 이름을 묘덕이라 하였는데, 재물을 희사하여 미지산에 이 암자가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나 한산자(韓山子)가 이 기를 쓰게 된 이유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즉 묘덕이 시주하여 윤필암이라는 암자를 만들었는데, 묘덕은 정안군부인 임씨라는 것이다. 직지를 간행할 정도로 재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왕실 혹은 문벌귀족 출신임은 확실하다.

한편 1988년 ‘묘덕계첩(妙德戒牒)’이 발견되었는데, 계첩이란 수계식(受戒式) 뒤에 계를 받았음을 증명하는 첩(牒)이다. 1326년 인도의 고승 지공(指空)이 고려에 와 세속인들에게 수계할 때, 그녀 역시 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 ‘묘덕’이란 보살명을 받았고, 이후 비구니가 된 뒤 그대로 법명으로 썼다고 추정할 수 있다. 꼭 동일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지공에게서 계를 받을 정도였다면 역시 왕가나 문벌귀족의 딸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그녀였을 가능성도 없는 게 아니다. 묘덕은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발전에 여성들이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를 보여준다.(권순형, 한국여성인물사전)